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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소설, '부활' 속의 토지

정치, 경제, 사회 촌평

by 박인성의 중국이야기 2024. 1. 2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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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의 '부활', 민음사판(박형규 역)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을 오랜만에 다시 읽게 된 건, 이 소설 속에 주인공 네흘류도프가 자신 소유 토지의 토지 소유권을 소작인들에게 양도해 주는 장면이 있다는 것과 톨스토이가 '진보와 빈곤'의 저자 헨리 조지의 토지 관련 사상과 주장을 접하고 적극 지지했으며,  널리 전파하려고 애썼고, 그 결과 중 하나가 소설 부활 속의 그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설 부활 제2부 시작 부분에 네흘류도프가 그런 고민과 실행을 하기 까지  과정을 묘사한 대목을, 민음사 판(박형규 역)과 문학동네 판(백승무 역)을 놓고 번역 문장을 대조해 가면서 정독했습니다.

 

네흘류도프가 헨리 조지의 '지대조세론'까지 거명하며 자신이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영지의 소유권을 계속 향유하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고민하는 장면을 확인하며 읽는 건 역시 인상적이었고, 감동까지 고 있는 순수한 감정 양심 아직까지 나에게 남아 있다는 것 확인하는 것도 좋았습니다.

 

 소설을 이미 오래 전에 읽다고 여기고 있었는 데 과연 내가 제대로 읽은 건가? 라는 생각도 했고,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다시 실감했습니다.  이번에 소설 부활을 다시 읽으면서 밑줄 긋고 메모해 둔 대목 중 주요 구절을 소개합니다.

 

 

"..., 네흘류도프는 헨리 조지의 가르침을 따르던 대학 시절부터 이 모든 것을 이해했고, 그 가르침에 따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토지를 농민들에게 나눠줬던 것이다. 그때 그는 오십 년 전에 만연했던 농노 소유가 죄악이었던 것처럼 이 시대의 죄악은 토지 소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일 년에 2만 루블 가까운 돈으로 생활했던 군인 시절 이후 네흘류도프의 삶에서 구속력을 상실했고 곧 잊혔다. 그는 사유재산에 관한 자신의 입장이나 어머니가 주는 돈의 출처에 대해 스스로 묻지 않았고 아예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머니가 죽고 물려받은 자신의 재산, 즉 토지를 관리해야 할 상황이 되자 토지 사유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할 필요가 생겼다. 한 달 전만 해도 네흘류도프는 자신이 직접 영지를 관리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에게는 현 질서를 바꿀 힘이 없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영지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돈만 받아가며 마음 편히 지냈을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 백승무 옮김, '부활 2', 문학동네, 2013. 10-11쪽)

 

"그는 지난날 한때나마 솔직한 것을 자랑으로 삼고 언제고 진실을 말하는 것을 신조로 삼았으며 또 실로 성실했으나, 지금은 무서운 허위, 빈틈없는 허위-모든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허위- 속에 자신이 갇혀 있다고 느꼈다. 그는 허위 속에 빠졌고 그런 생활이 몸에 배어 그것에 만족하며 지냈던 것이다." (레프 톨스토이, 박형규 옮김, '부활 1', 민음사, 1판 42쇄, 2017, 178-179쪽)

 

" 오래전부터 자신의 영지에 관한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농민들과 관리실, 즉 지주와의 관계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 관계란 좋게 말하면 농민이 지주에게 전적으로 의존하는 관계이고, 보다 쉽고 직설적으로 말하면 농민은 그저 지주의 노예에 불과한 관계였다.

그러나 1861년에 폐지된 농노제의 농노처럼 한 명의 주인에게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 토지가 없거나 아주 적게 소유한 농민들이 대지주들에게 예속되는 형태였다.

 

"머슴을 고용해 직접 토지를 경작하는 대신 농민들에게 임대하는 방식은 농노 소유주가 농노들에게 노역 대신 세금을 받는 방식과 같았다. 이런 조치가 문제 해결책은 아니지만 문제 해결을 향한 한 걸음이 될 수는 있다. 훨씬 거친 폭력에서 한결 낮은 폭력으로 옮겨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네흘류도프는 이 방식을 도입할 생각이었다." (레프 톨스토이, 백승무 옮김, '부활 2', 문학동네, 2013. 10-11쪽)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전부 포기하는 것을 쉽다고 여겼는 데 지금은 이것들뿐만 아니라 토지를 나눠주고 당장 그에게 절실한 수입의 절반을 잃는 것도 아깝게만 느껴졌다. 농민들에게 토지를 임대하고 영지를 청산하겠다는 결정이 경솔한 것은 아닌지, 꼭 그렇게 할 필요가 있는지 하는 갈이 그의 마음을 휘저었다.

 

'......, 토지가 없으면 이 집과 농장도 유지할 수 없지만 나는 곧 시베리아로 떠날 것이다. 그러니 이 집도, 영지도 필요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 맞아, 하지만 시베리아에서 평생을 보낼 건 아니다. 결혼하면 아이도 생길 것이다. 내가 영지를 고스란히 상속받았듯이 나도 아이들에게 상속해 주어야 한다. 나의 의무이다. 모조리 나눠주고 청산하는 건 쉽지만 다시 모으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무엇보다 내 인생을 잘 고민해 보고 어떻게 먹고 살 건지 결정한 다음 그에 따라 재산을 처분해야 한다.

 

지금 이 결심은 확고한가? 내 양심에 따른 행동인가? 남들한테 과시하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닌가?'  네흘류도프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남들이 자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 결정에 영향을 미쳤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많은 의문이 생겨났고 그 의문의 해답은 더욱더 난망해졌다.  생각을 떨쳐 내려고 그는 깨끗한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 (레프 톨스토이, 백승무 옮김, '부활 2', 문학동네, 2013. 15쪽)

 

"......, 이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는 이토록 명확한 현실을 사람들이 왜 보지 못하는지, 자신은 왜 그토록 오랫동안 보지 못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농민들은 죽어간다. 그들은 이 죽음에 익숙해져 버렸다. 아이들의 죽음, 여성들의 과중한 노동, 기아, 특히 노인들의 기아 등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농민들은 점차 이런 상태에 빠져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하고 불평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농민들에게는 이런 삶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까지 생각한다.'

농민들이 가난한 이유, 적어도 그 가난의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들을 먹여 살릴 토지가 그들의 손에 있는 게 아니라 소유권을 행사하며 농민들의 노동력으로 먹고사는 자들의 손에 있기 때문이었다.

 

농민들은 토지가 없어서 굶어 죽는 데, 토지 소유자들은 극한 상황에 처한 농민들의 수확을 외국에 팔아 모자와 지팡이, 마차와 청동 장식품, 차와 향료 따위를 사는 데에 소비한다.......,

이건 너무 끔찍해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를 예방하기 위한 방법을 찾거나 적어도 이 사태의 공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반드시 개선책을 찾을 것이다.' 그는 자작나무 가로수길을 거닐면서 생각했다. '학계와 정부기관, 언론 등에서 농민들의 빈곤 원인과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그들의 삶을 개선시킬 한 가지 확실한 방책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그것은 바로 농민들에게서 토지를 약탈한 문제에 대한 지적과 해결방안에 대한 고민과 의견이다.'

 

네흘류도프는 한때 자신이 매료되었던 헨리 조지의 주요 사상을 떠올렸다. 그는 자신이 이 모든 것을 잊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토지는 사적 소유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물이나 공기, 햇빛처럼 매매의 대상도 될 수 없다. 모든 사람은 토지에 대해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고, 토지가 사람들에게 주는 혜택에서도 동등하다.'

 

그는 자신이 상속받은 영지인 쿠즈민스코예에서 처리했던 일을 떠올릴 때마다 왜 부끄러웠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 토지에 대해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소유권을 승인하고 그 일부를 농민들에게 임대하려 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신에게 그럴 권리가 없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이제는 그런 짓을 하지 않을 것이며 쿠즈민스코예에서의 일도 바로 잡을 것이다.

그는 새로운 계획을 구상했다. 토지를 농민에게 임대하되, 그 임대료를 농민들의 재산으로 인정하고 그것으로 인두세나 공공자금을 지불하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단일세 제도는 아니지만 현 상황에서 단일세에 가장 근접한 방식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그가 자신의 토지 소유권을 포기했다는 점이었다...."

(레프 톨스토이, 백승무 옮김, '부활 2', 문학동네, 2013. 39-41쪽)

 

"......, 관리인은 타인에게 해를 끼쳐서라도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게 인지상정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 데 네흘류도프가 토지에서 나오는 모든 수익을 농민들의 공공자금으로 사용하겠다고 말하자 자신이 뭔가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다.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나리께서는 이 공공자금의 이자 수익을 취하시겠다는 거죠?'  얼굴 표정을 환하게 만들며 관리인이 말했다.

'아니요 그것도 포기합니다. 토지가 개인의 소유물이 되어선 안된다는 사실을 당신도 이해해야 합니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토지에서 나오는 모든 것은 만인의 소유입니다.'

'그렇게 되면 나리의 수입이 없어지는 데도요?' 웃음기를 거둔 관리인이 말했다.

'네, 저는 그 수입도 포기합니다.'

 

관리인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고 난 뒤 다시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이제야 그는 깨달았다. 네흘류도프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관리인은 네흘류도프의 계획에서 자신이 챙길 이득이 무엇인지 골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임대 토지를 잘 활용하기 위해서 그의 계획을 정확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곧 자신이 얻을 이익이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은 관리인은 실망을 금치 못하고 그 계획에는 관심을 끊은 뒤 오직 주인에게 잘 보이기 위해 미소만 지을 뿐이었다......."  (레프 톨스토이, 백승무 옮김, '부활 2', 문학동네, 2013. 42-43쪽)

 

또 한편으로, 네흘류도프가 시베리아의 유형지로 압송되는 카츄샤를 따라가는 여정에서 혁명가 노보드보로프란 인물을 아래와 같이 묘사한 구절에 구구절절이 공감한 이유는, 이러한 인물과 성격 유형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자칭 타칭 "586"이나 주화 운동 경력이 있다고 하는 류들을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역시 대문호의 시선과 문장력이 다르 다르구나 하고 느끼고 감탄다.

 

"그에게는 모든 것이 명확하고 간단했으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실로 편협하고 치우친 견해를 갖고 있어 그에게는 모든 게 명확하고 간단했기에 필요한 것은 자신이 해야 할 말의 논리성을 갖추는 것뿐이었다. 그의 지나친 자만심은 사람들을 뒤로 물러서게 하거나 복종시키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는 그를 사려 깊고 똑똑하다고 인식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만 활동했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그를 따랐고, 그는 큰 성공을 거두었다." (레프 톨스토이, 박형규 옮김, '부활 2', 민음사, 1판 42쇄, 2003, 304쪽)

 

 

[참고, '우리 시대의 노예제도']

 

헨리 조지가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예제가 정의롭지 못하다면 그 근원이 되는 토지사유제 역시 정의롭지 못하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토지를 소유하면 언제나 인간을 소유하게 되며, 그 정도는 그 토지사용의 필요성이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정해진다. 노동자의 노예화가 발생하는 원인은 토지를 일부 사람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헨리 조지의 사상에 깊이 공감했던 톨스토이는 '우리 시대의 노예제도'라는 책에서 그와 관련한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예컨대 이 시대에는 쓰레기장으로 일하러 보낼 죤이라는 노예를 데리고 있는 노예주는 없다고 말할 수는 있다. 단, 그 대신에 5실링을 지불하겠다고 하면, 그 돈이 절실히 필요한 수백 명의 죤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잉여 노동력) 가운데서 임의로 한 사람을 선택할 수 있다. 이 경우 고용주 자본가는 잔혹하고 인색한 이미지의 노예주가 아닌, 자기가 부리는 일꾼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시혜자가 된다.”

톨스토이가 표현한 ‘우리 시대의 노예들’은 토지가 없이 노동을 팔아 생존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었다. 톨스토이에 의하면, 러시아의 농노제 철폐와 미국의 노예제 철폐는 이미 그 시대상황에서는 불필요하게 된 그 이전 시기 노예제도의 낡아빠진 형태를 폐기한 것이지만, 그 대신에 더욱 강력한 형태의 노예 제도가 등장하여, 훨씬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을 사슬에 묶어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톨스토이는 헨리 조지가 주창한 '지대조세제'를 실시하면, 사람들을 노예 상태로 몰아넣게 되는 첫 번째 원인, 즉, 토지가 없는 사람들이, 바로 토지가 없다는  현실 상황 때문에 감수해야 하는 그런 상황을 제거할 수 있다고 보았다.

톨스토이는 ‘우리 시대의 노예제도’의 발생 원인으로 토지사유제뿐만 아니라 가혹한 세금제도, 그리고 도시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상품에 얽매인 욕구 등 세 가지를 거론하면서, 노예에서 해방된 진정한 자유인의 노동은 자영 농업 노동임을 주장하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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